교구소개

2023년
[행복의 해] “보아라, 내가 오늘 너희 앞에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을 내놓는다.”(신명 30,15)
  • 작성일 : 2022-11-25
 
+ 찬미예수님,
 

사랑하는 교우, 수도자, 사제 여러분!
새해도 주님께 희망하며 한 해를 시작합시다. 올해를 행복의 해로 선언합니다. 그간 우리는 하느님께 드려야 할 우리의 덕목으로서 믿음, 희망, 사랑을 묵상하였습니다. 또한 신··애 삼덕을 위한 우리 그리스도인의 기본적인 행동지침, 기도와 자선과 절제를 살고자 했습니다. 올해부터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선언하신 행복을 묵상하고, 그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고자 합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까닭은 우리의 행복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행복을 하느님 나라로 표현하셨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전하는 일을 당신의 사명으로 여기셨습니다. “나는 다른 고을에도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한다. 나는 이 일을 하러 왔다.”(루카 4,43) ‘하느님 나라를 전하는 일은 제자들의 사명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 제자들을 뽑고, 파견하셨습니다. 제자들을 둘씩 짝 지워 파견하시며 명하셨습니다.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음을 전하여라.”(루카 10,11) 사실 예수님이 세우신 우리 교회의 사명도 다르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행복할 수 있도록 땅 끝까지, 세상 끝날까지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모든 사람들이 가장 우선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입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아라. ... 너희는 먼저 하느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라. 그 나머지는 덤으로 주실 것이다.”(마태 6,25-33 참조) 이 말씀은 당시 상황을 파악하지 않으면 알아듣기 어렵습니다. 가난했던 사람들에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았던 그들에게 내일을 걱정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물론 예수님이 가난한 청중들의 처지를 전혀 모르거나, 그들의 처지를 배려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청중의 처지를 이해하고 배려하였기 때문입니다. 항상 청중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말씀하셨습니다. 농부들을 위해서 씨앗이나 밭에 묻힌 보물의 비유를, 어부들을 위해서 그물의 비유를, 장사꾼들을 위하여 값진 진주의 비유를, 그리고 집안의 아낙네들을 위하여 누룩의 비유를 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의식주가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하느님 나라가 훨씬 더 가치가 있고,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행복은 여러 가지 낱말로 표현됩니다. 그리스도교는 그것을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불교에서는 극락왕생이라고 합니다. 성경에서는 천국’, 교부들은 지복직관’, 심리학자들은 자아실현’, 또는 자아완성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행복’, 구원하느님 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에게 하느님 나라행복의 완전체’, ‘행복의 완성입니다. 예수님은 이 행복의 나라를 위한 가족관계를 새롭게 설정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마태 12,48)라고 반문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태 12,49-50) 그리고 하느님 나라로 가는 길을 여덟 가지로 제시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산상설교의 진복팔단입니다. 진복팔단하느님 나라의 대헌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십계명이라면, 신약에서는 진복팔단입니다.
 

우선 그 첫 번째가 마음의 가난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러한 선언에 대해 의아해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다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래도 알아들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결국 그분의 말씀이 옳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자가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돈이 행복을 가져다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러한 세상의 흐름과 역행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더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행복의 조건은 돈이나 재물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가난한 사람도 행복할 수 있고, 행복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스티브 잡스나 많은 부호들이 유언으로 남긴 글에서도 돈이 행복의 조건이 아니라는 걸 알려줍니다. “... 끝없이 부를 추구하는 것은 결국 나 같은 비틀린 개인 만을 남긴다...”(스티브 잡스)
 
이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마음의 가난을 숙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루카 복음의 가난을 마태오 복음은 마음의 가난으로 표현하였습니다. 히브리어 아나뷤을 해석하는데 차이를 보인 듯합니다. ‘아나뷤주님의 가난한 사람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가난했던 이유는 게으름이나 능력 부족이 아닙니다. 하느님 때문에, 하느님을 믿는 신앙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바빌론 땅에 강제로 이주하게 된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곳 환경과 생활 습관에 적응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자면 이스라엘 신앙 전통이나 습관을 포기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신앙과 전통과 습관을 지키려면, 그곳에서는 이방인이 되고, 부유하게 살 수 없습니다. 마치 미국으로 이민을 간 한국 교민들이 우리와 다른 습관과 생활양식과 행동방식을 지닌 그들 속에서 우리 것만을 좋은 것으로 고집하게 되면 경제적으로 경쟁할 수 없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훗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이스라엘을 재건한 사람들은 아나뷤들 이었습니다.
 

가난한 마음은 부자들을 시기하지 않습니다.
가난한 마음은 게으름을 찬양하지 않습니다.
가난한 마음은 가난한 이들을 헤아립니다.
가난한 마음은 가난한 이들에게 자비롭습니다.
가난한 마음은 아주 작은 것으로도 행복을 느낍니다.
가난한 마음에는 하느님이 계실 곳이 넉넉합니다. 바로 그런 까닭에 가난한 마음에 하느님 나라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이 계신 곳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의 뜻이 펼쳐지는 곳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보물이 묻힌 밭을 발견한 기쁨 그 이상을 누릴 수 있는 행복의 나라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새들의 보금자리보다 더 아늑한 곳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유혹이 스며들 수 없는 곳이요, 악으로부터 보호되는 곳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이 전부가 되는 곳입니다. 바로 그런 까닭에 행복은 가난한 마음에 자리합니다.
 

사랑하는 원주교구 교우, 수도자, 사제 여러분!
올해는 가난한 마음으로 하느님께서 선사하시는 행복을 맛봅시다. 하느님의 은총을 기도합니다.
 
 
2022년 대림 제1주에
천주교 원주교구장 조규만 바실리오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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