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소개

2017년
“행복하여라, 주님께 그 믿음을 두는 사람” (시편 40, 5)
- 하느님의 은총에 응답하는 신앙의 해 -
  • 작성일 : 2020-03-12

+ 찬미 예수님,
 

 친애하는 원주교구 교우, 수도자, 성직자 여러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평화를 기원합니다. 
 

우리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분은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 16).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은총을 베푸십니다. 그분의 사랑과 은총에 대하여 우리가 응답할 수 있는 자세는 바로 신앙과 희망과 사랑입니다(1코린 13, 13 참조). 교회는 오랜 역사를 거쳐 하느님께 응답하는 인간의 올바른 자세로 신・망・애 삼덕을 강조하였습니다. 저는 원주 교구장을 시작하는 첫 번째 해로서 올 한 해가 원주교구 모든 형제, 자매들이 믿음으로‘하느님 은총에 응답하는 신앙의 해 ’가 되기를 바랍니다.

 

일찍이 아브라함은 외아들 이사악을 봉헌하는 믿음으로 하느님의 말씀에 응답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얹고 두 하인과 아들 이사악을 데리고서는, 번제물을 사를 장작을 팬 뒤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곳으로 길을 떠났다”(창세 22, 3). 성모님께서는 죽음을 각오하고 주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응답하였습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 38).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마태 8, 10). 그리고 믿음의 힘을 강조하셨습니다. “가거라. 네가 믿은 대로 될 것이다”(마태 8, 13).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없는 곳에서는 기적을 베풀지 않으셨습니다(마태 15, 38; 마르 6, 5 참조). 그리고 병자들을 고쳐주시면서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태 9, 22; 마르 10, 52; 루카 7, 50; 8, 48; 17, 19).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상전벽해가 될 수 있다고 가르치십니다(루카 17 6 참조).

 

우리에게는 훌륭한 신앙의 모범들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나라 순교자들입니다. 그분들은 믿음 때문에 목숨을 바쳤습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과 성 정하상 바오로 회장님과 그 동료 순교자들이 그렇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옥중 편지가 그분의 믿음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천주께서 무시지시(無始之時)로부터 천지 만물을 배설(配設)하시고, 그 중에 우리 사람을 당신 모상(模像)과 같이 내어 세상에 두신 위자(爲者)와 그 뜻을 생각할지어다. [...] 세상에 한 번 나서 우리를 내신 임자를 알지 못하면 난 보람이 없고, 있어 쓸데없고, 비록 주은(主恩)으로 세상에 나고 주은으로 영세 입교하여 주의 제자 되니, 이름이 또한 귀하거니와 실이 없으면 이름을 무엇에 쓰며, 세상에 나 이 입교한 효험(效驗)이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배주배은(背主背恩)하니, 주의 은혜만 입고 주께 득죄(得罪)하면 아니 남과 어찌 같으리오. [...] 우리는 미구에 전장에 나아갈 터이니, 부디 착실히 닦아 천국에 가 만나자. [...] 내 죽는 것이 너희 육정과 영혼 대사에 어찌 거리낌이 없으랴. 그러나 천주께서 오래지 아니하여 너희에게 내게 비겨 더 착실한 목자를 상 주실 것이니, 부디 서러워 말고 큰 사랑을 이뤄, 한 몸같이 주를 섬기다가 사후에 한가지로 영원히 천주 대전에 만나 길이 누리기를 천만 천만 바란다.” (김대건 신부님의 「옥중 서한」에서, 1846년 8월 말)

 

정하상 바오로 회장님이 성직자를 모셔오기 위해 북경을 아홉 차례나 오갔던 삶은 그분의 믿음이 얼마나 돈독한지를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한 집안에서 아버지가 가장 중하지만, 아버지보다 높은 사람은 임금입니다. 또 한 나라에서 임금이 가장 중하지만 임금보다 높은 것은 천지대군입니다. 아버지의 명을 따르면서 임금의 명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 죄가 무거울 것이요, 임금의 명을 따르되 천지대군의 명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 죄가 비길 바 없이 클 것입니다. [...] 도리 역시 지역에 구애됨 없이 성스러우면 참된 것이지요. [...] 도리가 참되고 바른지 거짓되고 나쁜 것인지를 자세히 분별하신 뒤에 [...] 금령을 늦추고 체포령을 거두며 옥에 갇힌 이들을 놓아 주시어, 온 백성들과 함께 편안하고 즐겁게 태평을 누릴 수 있도록 해 주시기를 천번 만번 바라고 또 바랍니다.” (정하상 바오로 「상재상서」에서)

 

순교자들만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많은 성직자와 교우들 역시 신앙의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최근 가경자가 되신 하느님의 종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이 그렇습니다. 전국 5도에 흩어져 있는 127개 교우촌의 신자들을 찾아 밤낮으로 이 교우촌, 저 교우촌으로 전전하시다가 순직하셨습니다. 신부님의 13년간의 사목은 참으로 외롭고 고달프기 그지없었을 것입니다. 신자들의 삶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는 거룩한 우리 종교를 실천할 자유가 조금도 없습니다. 사방에 궁핍 투성이요, 사방에 투쟁뿐입니다. 우리는 마치 지극히 큰 죄나 저지르는 듯이 항상 전전긍긍 떨고 있으며, 사람들은 공연히 우리를 미워하고 마치 우리를 흉악범들처럼 멸시합니다. 만일 누가 신앙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그 즉시 온 가족과 친척들과 이웃 사람들이 벌떼같이 들고 일어나 공격하고 그를 인간 중에 가장 부도덕한 자로 여겨 저주합니다. 온갖 방법으로 못살게 괴롭힙니다. [...] 단 한번이라도 [...] 은혜를 받기 위하여 이틀이나 사흘 길을 걷는 것쯤은 오히려 가깝게 여깁니다. 우리는 [...] 미사성제에 참여하려고 떼를 지어 한꺼번에 급히 몰려오는 것을 막기 위해 항상 매우 엄격하게 다루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명령을 위반하는 신자들에게 아무리 벌을 내려도 신자들은 이 벌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신자들이 막무가내로 순명하지 않습니다.” (최양업 신부님의 일곱 번째 편지, 도앙골에서 1850년 10월 1일)

 

우리는 박해시대와 달리 편안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편안함이 우리를 안이하게 만들고 게으르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각 교구마다 각 본당마다 많은 사람들이 소위 ‘냉담하고’ 있습니다. 불과 몇 분 걸리지 않는 곳에 성당이 있지만 주일미사마저 궐하고 있습니다. 2016년 한국천주교 통계는 전신자의 20%만 매 주일 미사에 참여하는 것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우리가 믿어야 할 신앙의 내용은 「사도신경」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신앙이란 세상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성부, 성자, 성령이신 삼위일체 하느님을 믿는 일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외아드님을 우리에게 보내신 하느님의 강생의 신비를 믿는 일입니다. 당신의 생명까지 우리를 위해 음식을 내어주신 성체의 사랑의 신비를 믿는 일입니다. 그리고 ‘교회’, ‘죄의 용서’, ‘성인들의 통공’, ‘육신의 부활’ 그리고 ‘영원한 삶’을 믿는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믿어야 할 이 신앙의 내용들이 얼마나 큰 보물인지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다면 우리에게는 어떤 희망도 없습니다. 코헬렛 저자가 외치는 것처럼, 그저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코헬렛 1, 2)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끝까지’, ‘다 이루어질 때까지’ 한결같이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의미가 없습니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이면 시드는 풀꽃’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이 ‘영원한 생명’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잘 알지 못합니다. 그 영원한 생명을 살도록 미사성제 안에서 베풀어주시는 ‘성체’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지 못합니다. 아마 그것을 알았더라면 박해시절 사흘 길을 걸어서라도 미사에 참례했던 그 신자들의 마음을 잘 헤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죄의 용서’가 얼마나 절실한 은총인지 죄의 아픔을 겪어본 사람은 알 수 있습니다. ‘육신의 부활’과 ‘영원한 삶’은 꿈같은 일입니다. 믿기지 않는 크나큰 은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놓치는 것이 안타까워서 누누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 입을까?’하며 걱정하지 마라.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 6, 31-33).

 

하느님께 대한 신앙만이 아니라, 인간 상호간의 믿음도 중요합니다. 상도덕의 기본은 신용입니다. 부부간에 가장 필요한 것도 상호 신뢰입니다. “믿지 않으면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성 안셀모의 「프로스로기온」 참조).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을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하느님 아버지께로부터 우리에게 오신 분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사람들이 영원한 생명을 살 수 있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신앙을 청합니다. 우리는 세례 때를 기억합니다. “하느님의 교회에서 무엇을 청합니까?” “신앙을 청합니다”, “신앙은 그대에게 무엇을 줍니까?” “영원한 생명을 줍니다”. 말하자면 신앙은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는 손과 같습니다. 우리는 겸손하게 우리의 약한 신앙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루카 17, 5). 그리고 믿음이 강한 사람들은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로마 15, 1 참조).

 

우리 원주교구에는 많은 성지와 유적지가 있습니다. 배론, 풍수원, 용소막, 원동 그리고 강원감영 등 곳곳에 우리가 본받아야 할 순교자들과 선배 신앙인들의 숨결과 발자취가 배어 있습니다. 특히 배론 성지에는 ‘땀의 순교자’ 이신 최양업 신부님의 묘가 있습니다. 최초의 신학교 터가 있습니다. 그곳 성지에 우리 교구의 ‘은총의 성모 마리아 기도학교’를 건립하기로 하였습니다. 원주교구 설정 50주년을 맞이하여 건의되었던 숙원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기도하고, 기도를 배우고, 기도를 가르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신앙을 배우고, 희망을 키우고 사랑을 나누게 될 것입니다. 기도학교 건립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고, 우리의 정성을 모읍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기를 빕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한국의 모든 순교 성인 성녀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2016년 11월 27일 대림 제1주일
천주교 원주교구장 주교 조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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