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소개

2024년
[자비의해] “주님, 당신은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신 하느님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십니다.”(시편 86.15)
  • 작성일 : 2023-12-01
 
✝ 찬미예수님,
 
사랑하는 원주교구 교우들과 수도자와 사제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저는 올해를 자비의 해로 선언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2025년을 희망의 순례자들희년으로 선포하셨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2000년을 대희년으로 선포한지 25년이 지난 까닭입니다. 우리는 ‘2025년 희년을 준비하고자 2024년을 하느님의 자비를 기억하고 묵상하는 한 해로 맞이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사실상 하느님의 자비로 태어났고, 또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들려주신 만 탈렌트의 비유는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무한한 자비를 암시해줍니다. “임금이 셈을 하기 시작하자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 하나가 끌려왔다...”(마태 18,24) 만 탈렌트는 어마어마한 액수입니다. 어느 신부님이 비교적 세밀하게 계산하였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당시 은화 1세켈은 4일치 품삯이었고, 금화 1세켈은 60일치 품삯에 해당하였다... 로마화폐로 환산하면 한 탈렌트는 노동자 6000일의 품삯이 된다. 대략 17년 임금이다.” 그러면 만 탈레트는 만 명에게 17년간 봉급을 줄 수 있는 액수의 돈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너무 지나치게 과장해서 말씀하시는 것이라 여길지 모르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그 이상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우주가 생겨나고, 그 가운데 지구에서 인류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기적의 신비입니다. 우주 과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인간이 이런 지구 환경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수차례의 계속적인 기적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것을 과학적 용어로 미세조정 기본 상수라고 말합니다. 예컨대 빅뱅으로 우주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아주 정밀한 질량이 아니면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물리학 교수는 그 질량이 447,225,917,218,507,401,284,016g/cm3 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1g만 넘어도 열린 우주가 되어 형성되지 않고, 1g이 모자라도 질량 부족으로 닫힌 우주가 되어 오늘날의 우주가 형성될 수 없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기적처럼 놀랍게 형성된 이 우주에서 지구에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미세하게 조율되어있는 기본 상수 30가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가령 빛은 1초에 30Km(정확하게 299,792,458m/) 속도를 유지해야 하고, 중력 상수, 블츠만 상수 등이 30가지가 정확하게 그 조건을 유지해야만 우리 인간이 살 수 있는 지구가 된다고 합니다. 하느님을 인정하지 않는 과학자들은 이런 기적을 두고 확률적으로 우연히라고 말합니다. 물컵 하나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아는 우리에게 물컵보다 어마어마하게 정교하고 세밀하게 이루어진 이 우주가 우연히되었다는 그들의 설명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오늘날 우리가 이 지구상에서 살아가는 일은 기적입니다.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태양풍, 적외선을 비롯한 우주선, 혜성을 비롯한 수많은 소행성들의 침범, 초신성에서 나오는 해로운 이물질들은 이 지구에 결정적인 타격을 줍니다. 그럼에도 지구가 45억년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지구에서도 인류는 빙하기와 빙하기 사이에 생존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도 화산과 지진과 폭풍과 해일 등의 자연적인 재해뿐만 아니라, 인간들의 욕심에서 비롯된 전쟁과 테러와 전염병을 비롯한 질병 등의 위협이 있고, 그 와중에 인류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류의 생존은 그야말로 엄청난 기적을 요구합니다. 그밖에도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에는 놀라운 기적이 많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것을 이라고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교인들은 하느님의 섭리라고 말합니다. 곧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그런 까닭에 구약의 백성들은 시편을 통하여 하늘과 땅을 만드시고, 낮과 밤을 다스리도록 해와 달과 별을 만드신 하느님의 자비를 노래합니다.(시편 135편 참조)
 
우리 자신들의 삶을 헤아려보아도 그렇습니다. 출생부터 성찰한다면 현재의 나의 존재는 기적의 결실, 곧 하느님의 자비의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수많은 아버지의 정자 가운데 그 하나가 어떻게 내가 될 수 있었을까? 불교에서는 인간 생명으로 태어나는 일은 전생에 나라를 구하는 공적을 세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어렵고 놀라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 삶도 하느님 자비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으냐?”(마태 6,26)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고, 보호하며, 촉진하고 새롭게 만들며 재건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자비입니다.(발터 카스퍼, ‘자비’ 107쪽 참조) 제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아도, 부족함에도 사제가 되고, 주교로 임명되어 여러분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 모든 행운은 철저하게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때로 아프기도 하고, 상처도 입고, 위기도 있었지만 치유되고, 회복되고, 고비를 넘겼습니다. 같은 죄를 수없이 반복해서 고백했지만 그럴 때마다 용서도 받았습니다. 날마다 은총이요 자비입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자비를 입은 우리들은 당연히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비유가 그것을 강조합니다. “이 악한 종아!....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마태 18,33) 이는 만 탈렌트를 임금으로부터 탕감받은 사람이 500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를 독촉하여 감옥에 넣고 빚을 갚으라고 한 사실에 분노하신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들에게 진지한 성찰을 촉구하시는 말씀입니다.
 
시편 136편에서처럼 하느님의 영원한 자비를 노래합시다.
그리고 우리도 이웃에게 자비를 베풉시다.
 
주님의 은총으로 여러분 모두에게 평화와 기쁨과 건강을 기도합니다.

 

202312월 대림 첫 주에
천주교 원주교구장 조 규 만 바실리오 주교
지난사목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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