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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사회교리에 비추어 바라본 현 시국과 우리의 자세
  • 작성일2016/11/28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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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사회교리에 비추어 바라본 현 시국과 우리의 자세-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요한 2,19)

 

“그들이 통치하니 우리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누구도 말할 수 없습니다. 나는 그들의 통치에 대해 책임이 있으며 그들이 더 잘 통치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능력껏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교회의 사회교리에 따르면 정치란 가장 높은 형태의 자선입니다. 정치가 공공의 선에 봉사하기 때문입니다. 예수에게 사형을 내린 빌라도처럼 손을 씻고 뒤로 물러나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무언가 기여해야 합니다. 좋은 가톨릭 신자라면 정치에 참여해야 합니다. 스스로 최선을 다해 참여함으로써 통치자들이 제대로 다스리게 해야 합니다.” <교황 프란치스코, 2013년 9월 16일 성녀 마르타의 집 소성당 미사 강론 >

 

1. 이 땅에서 인간 존엄성의 원리가 무너졌습니다.

 

가톨릭은 사회교리를 통해서,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기에 존엄하며 이 존엄성은 모든 인간에 대한 평등성의 기초’라고 선언합니다. 이에 근거하여 교회는 ‘모든 인간의 평등에 반하는 인간에 대한 어떠한 차별도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죄’라고 선포합니다.(간추린 사회 교리 144-148항 참조).

 

국가의 기본 법칙인 헌법도 이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제10조)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제11조)

 

헌법에 따라 국정을 책임지는 최고 책임자는 법 앞에 평등해야 하고 모든 국민을 평등하게 대해야 합니다.

 

그러나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박근혜 대통령과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적이 없는 최순실은 법 앞에 평등하지 않았고, 모든 국민을 평등하게 대하지 않았습니다.

 

현 정권에서는 인간의 존엄성에 바탕한 모든 국민의 평등권이 무너졌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인간 존엄성에 바탕한 평등권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원리로 공동선의 원리, 보조성의 원리, 연대성의 원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원리들은 현대의 민주적인 국가들의 헌법에 적절하게 반영되어 있습니다.

 

2. 공동선의 원리도 짓밟혔습니다.

 

공동선의 원리는 모든 인간에게 해당하는 공동의 선인 인간의 기본권을 실현하도록 촉구하는 원리입니다. 이 공동선의 실현을 위해 가장 우선되는 과제는 재화의 올바르고 공정한 분배입니다. 그러나 현 정권의 정책 결정은 재벌에 대한 특혜 위주로 이루어져 이 땅의 서민들, 노동자와 농어민에게 상실감을 주고 저항을 불러 일으켜 왔습니다.

 

더구나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인 최순실의 국정 농단 사건을 통해서 드러난 것처럼 국민을 위한다는 국가 정책이 특정 개인의 이익을 위해 시행되었습니다.

 

현 정권에서는 재벌의 이익을 위하여 그리고 개인의 이익을 위하여 공동선의 원리도 무참하게 짓밟혔습니다.


3. 보조성의 원리도 유린당했습니다.

 

보조성의 원리는, 국가와 같은 상위 단체는 공동체와 그 구성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되, 개인과 작은 단체의 자율성과 주체성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원리입니다. 국가가 지나치게 막대한 권한을 행사하게 되면 개인이나 민간단체의 자율성을 해치게 되고, 극단적인 경우에는 국민을 힘으로 통제하고 억압하는 전체주의 체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국가나 상위 단체는 하위 단체나 개인을 도와주되, 자체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말라는 것이 보조성의 원리의 핵심입니다.

 

이 보조성의 원리에 따라 국가가 할 일은, 단체나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일에 최선의 노력으로 책임을 지고, 단체나 개인이 잘 하고 있는 일은 간섭하지 말고 지켜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나 메르스 사태에서 보여주듯이, 현 정권은 국가적 재난에 직면하여 구조와 구난, 그리고 사태 수습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기보다는 국가가 할 일을 개인이나 단체에 미루고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만을 보여주었습니다. 반면에 문화계 블랙리스트나 체육계 전횡을 통해 드러나는 것처럼 간섭하지 말고 지켜주어야 할 것들에 대해서는 사익을 목적으로 간섭할 뿐만 아니라 권력의 힘으로 협박을 일삼아 왔음이 밝혀졌습니다.

 

현 정권에서는 보조성의 원리마저도 처참하게 유린당했습니다.

 

이 밖에도 현 정권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 한일 위안부 합의, 개성 공단 폐쇄, 사드 배치 결정, 등의 국민적 이해와 합의가 필요한 중요 정책 사항들에 대하여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졸속으로 결정하고 시행하여 국민적 저항을 불러일으켜 왔습니다.

국가 폭력으로 인하여 희생된 백남기 농민의 죽음 앞에서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조차 외면하여 국민을 위한 국가이기를 포기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정 운영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극에 다다른 지금에 와서도 밀실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졸속으로 추진하였습니다.

이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은 사실에 바탕한 진심어린 사과는 커녕 여전히 변명과 책임 회피에 급급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을 운영할 자격을 상실하였습니다. 또 그 방패막으로 일관하는 이 정권은 더 이상 국정을 수습할 능력도 없습니다.

 

이에 천주교 원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는, 박근혜 대통령의 무조건적인 퇴진과 국정농단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그 비호 세력인 현 정권의 해체를 요구합니다.

 

4. 우리는 연대성의 원리로 함께 합니다.

 

모든 인간의 평등한 존엄과 권리는 필연적으로 서로 돕고 의지하는 인간 상호간의 연대성을 요구합니다. 이 연대성은 ‘사회적 덕목’으로 고통 받는 이웃에 대한 책임감이며, 이웃과 자신의 선익을 위해 “공동선에 투신하겠다는 강력하고도 항구적인 결의”이기도 합니다.

 

많은 국민이 부끄러워하고 괴로워하며 ‘이게 나라냐’라고 자책하고 분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의 국민들은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한 열망을 한데 모아 촛불을 들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그 의지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국가권력은 추하고 부끄러운 모습이지만, 이에 대한 국민의 분노는 평화를 만나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모습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교회 또한 국가의 구성원으로 국정 책임자와 비선실세의 국정 농단에 분노합니다.

아울러 촛불로 표현되는 국민적 분노의 평화적 표출에 연대성을 가지고 함께 합니다.

 

오늘 우리의 이 분노는 파멸이 아니라 새로운 질서를 위한 분노가 되어야 합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요한 2,19)

 

이천 년 전, 예수는 장사꾼들의 소굴이 되어버린 성전을 정화하였습니다.

우리는 국민의 세금을 꾼들의 먹잇감으로 전락시킨 이 권력을 허물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바탕 위에 새로운 질서를 바탕으로 하는 이 나라를 다시 세워야 합니다.

인간 존엄성에 바탕한 평등성의 원리를 기초로 삼고, 사회의 방향을 바로 잡는 공동선의 원리로 기둥을 세우고, 위임받은 권력의 책임이 무엇이고 그 한계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하는 보조성의 원리로 벽돌을 쌓아 이 나라를 다시 새롭게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촛불을 든 모든 이가 연대성의 원리로 이 땅의 국민 그 누구도 소외받지 않도록 지붕을 엮어가야 합니다. 그리하면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도 무너지지 않는, 정의와 평화가 함께 하는 튼튼한 나라가 세워질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 각자 내 안에 키우고 있는 박근혜, 최순실을 허물기를 촉구합니다.

지금 드러난 곳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 수많은 박근혜, 최순실이 존재합니다.

‘나만 잘 되면 되지,’ ‘내 자식만 잘 되면 되지,’ 또는 ‘내게 잘해 주는 이 사람만 잘 되면 되지,’라는 생각이 권력을 만나게 되면 박근혜가 되고, 최순실이 됩니다.

내가 지금 ‘갑’질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직 내가 ‘을’이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권력을 감시하는 그 눈길로 항상 나 자신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사회에 대한 의무로 무너진 나라를 다시 세우고자 하는 온 국민의 평화적 노력에 함께 하며, 이 노력에 대한 교우들의 참여를 독려합니다.

 

“책임감 있는 시민 의식은 하나의 덕이고, 정치 생활에 대한 참여는 도덕적 의무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복음의 기쁨」 220항)

 

 

2016년 11월 25일

천주교 원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