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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성하의 여자 관상 생활에 관한 교황령
  • 작성일2016/11/17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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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여자 관상 생활에 관한 교황령
(2016년 6월 29일)

하느님 얼굴 찾기
(Vultum Dei Quaerere)

1. 하느님 얼굴 찾기는 창조주와 사랑의 대화를 늘 나누도록 부르심을 받은 인류의 역사에서 지속되어 왔습니다.1) 사실, 인간에게는 절대자, 곧 하느님을 찾는 마음을 지니도록 하는 억누를 수 없는 종교적 차원이 있습니다. 인간은 늘 의식하지는 않지만 이러한 필요를 느낍니다. 이러한 찾기로 모든 선의의 사람들은 하나가 됩니다. 스스로 신앙이 없다고 주장하는 많은 이들조차도 모든 인간이 지니는 이러한 깊은 갈망의 존재를 인정합니다. 모든 인간은 이러한 갈망에 이끌려 행복과 완성을 간절히 추구하지만 결코 기뻐 만족하지 못합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고백록』에서 이러한 갈망을 다음과 같이 감동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주님, 주님을 위하여 저희를 내셨기에, 주님 안에 쉬기까지는 저희 마음이 찹찹하지 않삽나이다.” 2) 이렇게 찹찹하지 못한 마음은 바로 하느님께서 먼저 인간을 찾으시어 당신에게로 신비롭게 이끄신다는 심오한 직관에서 생겨납니다.

이러한 찾기의 역동성은 그 누구도 혼자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증명하며 우리가 신앙의 빛으로 자기중심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거룩한 얼굴과 “다른 이의 거룩한 땅”3)에 이끌린 더욱 깊은 친교의 체험을 재촉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과 봉헌된 이는 세례를 통하여 참하느님을 찾는 이 순례를 시작하라는 부르심을 받습니다. 이 순례는 성령의 활동으로 그리스도를 더 가까이 따르기(sequela pressius Christi), 곧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점점 더 닮는 길이 됩니다. 이 길은 수도 봉헌으로, 특히 그 초기부터 세례를 실천하는 특별한 방식으로 여겨진 수도원 생활로 뚜렷하게 표현됩니다.

2. 봉헌된 이들은 자신들의 봉헌으로 “주님을 특별한 방식, 곧 예언자적 방식으로 따릅니다.”4) 그들은 일상생활에서 하느님 현존의 표징을 깨닫고 하느님과 인류가 우리에게 제기하는 질문들에 현명하게 대답하라는 부르심을 받습니다. 봉헌된 이들이 당면한 커다란 도전은 “하느님의 현존에 무관심한 세상에서 신앙의 눈으로”5) 끊임없이 하느님을 찾고, 예수님의 정결과 청빈과 순종의 삶을 현대인들에게 신뢰할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표징으로 새롭게 제시하여 “하느님 말씀의 살아 있는 ‘주석’”6)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의 특별한 봉헌 생활의 초기부터,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느님을 사랑하게 된 이들은 하느님의 얼굴을 찾는 데에 자신의 삶을 온전히 바치며 세상 가운데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고 바라보기를 갈망해왔습니다.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이나 등경 위의 등불처럼(마태 5,14-15 참조) 설립된 수도 공동체의 현존은 매우 단순한 삶으로도 교회 공동체 전체가 나아가는 여정의 목적을 분명히 밝혀줍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이 재창조될 그날을 바라보며 시대의 길을 따라 전진”7)하며 하늘의 영광을 선포합니다.8)

3.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마태 17,4)라는 베드로의 말이 모든 봉헌된 이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특히 관상 수도자들은 그리스도인 생활의 다른 모든 소명과 깊이 결합되어 “그리스도의 한 빛에서 퍼져가는 무수한 빛살과 같고, 그리스도의 밝은 빛이 교회의 얼굴을 비추어줍니다.”9) 그들은 “특별한 카리스마로 꾸준히 당신 아드님의 말씀과 행적들을 묵상하신 하느님의 어머니와(루카 2,19.51 참조) 주님의 발치에 앉아 주의 깊게 그분의 말씀을 들었던 베타니아의 마리아를(루카 10,38 참조) 본받는 데에 하루의 많은 시간을 바칩니다.”10)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는”(콜로 3,3 참조) 그들의 삶은 최초의 관상 수도자이신 주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의 표상이 됩니다. 그들은, 자기의 온 삶을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삼아 [바오로] 사도처럼 말할 수 있습니다. “나에게는 삶이 곧 그리스도입니다!”(필리 1,21 참조) 이렇게 하여 그들은 관상 생활의 부르심의 깊은 역동성을 이루는 포괄적인 특성을 드러냅니다.11)  

관상 수도자들은 인간의 역사 안에서 살아가면서, “어떤 사람보다 수려하신”(시편 45[44],3 참조) 그리스도의 광채에 이끌린 이들로 교회와 세상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 있습니다.12)  관상 수도자들은 하느님을 끊임없이 찾으면서 봉헌 생활의 진정성의 중요한 표징과 준거를 발견합니다. 서방의 수도원 생활의 시조인 베네딕토 성인은, 수도자는 온 생애에 걸쳐 하느님을 찾는 이들이라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는 수도 생활을 열망하는 이가 참으로 하느님을 찾는지(si revera Deum quaerit) 검증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13)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수세기에 걸쳐 특히 수많은 봉헌된 여자들은 “그들의 생활 전체와 모든 활동을 하느님께 대한 관상”14)에 봉헌하면서, [하느님 앞에서] 동정녀이자 [그리스도의] 신부이며 [신자들의] 어머니인 교회의 표징과 예언자가 되어왔습니다. 이를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역사의 사건들 가운데에서 당신의 백성을 끊임없이 지탱해주십니다.

4. 수도 생활은 다른 그리스도교 교파들과 일치되는 요소로15) 예언과 표징이 되는 고유한 형태를 지니며 “교회의 모든 지체가 그리스도인 소명의 의무를 꾸준히 이행하도록 효과적으로 이끌 수 있고 또 이끌어야 합니다.” 16) 기도 공동체, 특히 관상 공동체는 “세상과 분리됨으로써 세상의 중심이신 그리스도와 더욱 긴밀하게 결합되어”17) 있지만 복음을 완벽하게 구현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관상 공동체는 세례성사의 요구를 실천하여 식별의 모범이 되고 교회 전체에 봉사하라는 부르심이 됩니다. 곧 이 공동체는 길과 탐구의 표징이 되어 모든 하느님 백성에게 그들 삶의 가장 중요하고 궁극적인 의미를 상기시켜 줍니다.18)

봉헌 생활과 관상 수도 생활에 대한 존중과 칭찬과 감사

5. 교회는 그 초기부터 하느님 아버지의 부르심과 성령의 이끄심에 순명하여 “더 가까이에서”19) 그리스도를 따르며 갈라지지 않은 마음으로(1코린 7,34 참조) 자신을 그리스도께 봉헌하기로 결심한 사람들을 매우 존중하고 진심으로 사랑하여 왔습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와 모든 인간, 특히 가난한 이들과 고통 받는 이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에 이끌려, 봉헌된 동정녀, 과부, 은수자, 수도승, 수도자와 같은 다양한 형태로 예수님의 지상 생활을 정결과 청빈과 순명으로 재현하라는 부르심을 받습니다.20) 

주로 여자들로 이루어진 관상 수도 생활은 봉쇄 생활의 침묵을 바탕으로 하며, 은총과 자비라는 소중한 열매를 맺습니다. 여자 관상 생활은 언제나 교회 안에서 교회를 위하여 교회의 기도하는 마음, 은총의 보고, 사도적 풍요, 거룩함의 신비와 풍요로운 다양성을 가시적으로 증언합니다.21)
이러한 생활은 그리스도께 봉헌된 동정녀들의 개인적 경험에서 시작되었으며, 신랑이신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하여 사랑으로 응답하고자 하는 필요에서 생겨난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얼마 되지 않아서, 이러한 생활은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고 교회가 인정하는 수도회의 형태를 갖추어 공적인 동정의 선서를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수세기에 걸쳐 대부분의 봉헌된 동정녀들은 수도 생활의 형태로 함께 모였고, 교회는 적합한 규율로 이러한 생활을 보호하고 보존하는 데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봉쇄 생활은 그 정신과 이러한 공동체의 엄밀한 목적인 관상 [생활]을 보존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리하여 시간이 흐르면서, 믿는 이들의 마음에 현존하시며 새로운 형태의 제자 생활을 불러일으키시는 성령의 활동과 교회의 어머니다운 배려의 상호 작용으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관상 생활과 봉쇄 관상 생활의 형태가 생겨났습니다.22) 서방에서는 관상 정신이 다양한 은사들의 형태로 표현되었으나 동방에서는 관상 정신에서 커다란 일치를 유지하여23) 언제나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된 삶의 부요와 아름다움을 증언하였습니다.

으뜸가는 유일한 사랑이신 주님을 향한(호세 2,21-25 참조) 이러한 수녀들의 수세기에 걸친 경험은 성덕과 사명의 풍요로운 결실을 가져왔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도직의 힘이 수도원의 기도와 희생을 통하여 나왔습니까! 얼마나 많은 기쁨과 예언이 봉쇄 생활의 침묵을 통하여 세상에 선포되었습니까! 

주님께서 여자 수도 생활을 통하여 늘 베풀어주시는 성덕과 은총의 결실에 대하여, “지극히 높으시고 전능하시며 선하신 주님”께 감사의 노래를 부릅시다. “[주님] 찬미받으소서!”24)

6. 사랑하는 관상 수녀 여러분, 여러분과 또한 인간 [사회의] 변방에서 살아가며 복음화의 전진 기지에서 봉사하는 이들이 없다면 교회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겠습니까? 교회는 자신을 온전히 바치는 여러분의 삶을 깊이 존중합니다. 교회는 여러분의 기도와 헌신에 힘입어 오늘날 사람들에게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교회는 여러분을 필요로 합니다!

세상이, 특히 권력과 경제와 소비의 논리에 지배당하고 있는 세상의 대부분이 여러분의 특별한 소명과 숨겨진 사명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러한 것들을 매우 필요로 합니다. 거친 바다에 있는 선원이 자신을 안전한 곳까지 인도해주는 등대가 필요한 것처럼 세상은 여러분을 필요로 합니다. 여러분은 가까이에 있는 이들에게, 그리고 무엇보다 멀리 있는 이들에게 등불이 되십시오. 시대의 어두운 밤을 지나는 길에 있는 이들을 안내하는 등불이 되십시오. 아침을 기다리며(이사 21,11-12 참조) 새벽을 알리는(루카 1,78 참조) 파수꾼이 되십시오. 여러분의 변화된 삶과 침묵 속에서 묵상한 소박한 말들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분(요한 14,6 참조), 곧 우리의 삶을 완성시키시고 넘치는 생명을 주시는 한분이신 주님(요한 10,10 참조)을 우리에게 보여주십시오. 안드레아가 시몬에게 말한 것처럼, “우리는 주님을 만났습니다.”(요한 1,41 참조)라고 우리에게 외치십시오. 파스카 아침의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요한 20,18)라고 우리에게 알려주십시오. 여러분이 헌신하는 예언자적 삶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십시오. 여러분의 은사에 따라 복음적 삶의 기쁨으로 충만하게 살아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교회의 동행과 안내 

7. 공의회와 교황의 교도권은 중요한 문서들의 반포로 모든 형태의 봉헌 생활에 언제나 특별한 관심을 보여 왔습니다. 이 가운데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두 개의 훌륭한 문헌, 곧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과 수도 생활의 쇄신에 관한 교령 「완전한 사랑」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 가운데 첫째 문헌은 봉헌 생활을 하느님 백성의 교회론에서 파악합니다. 여기에서 봉헌 생활은 보편적인 성화 소명과 세례 봉헌에 내린 그 뿌리로 하느님 백성에 온전히 속하는 것입니다.25)  둘째 문헌은 모든 봉헌된 이에게 시대의 변화된 여건에 알맞은 쇄신을 요청하며 여기에 필수적인 기준, 곧 그리스도, 복음, 고유 은사, 교회, 오늘날 인간들에 대한 충실을 제안합니다.26)
우리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세계주교대의원회의 후속 권고 「봉헌 생활」(Vita consecrata)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후속 권고에는 봉헌 생활에 관한 세계주교대의원회의의 보화들이 담겨있으며, 봉헌 생활의 지속적 쇄신과 우리 시대에 복음에 대한 확실한 증언을 강화하는 데에 더욱 중요한 요소들을 담고 있습니다(특히 59항과 68항 참조).

또한 관상 생활에 확실한 지속적인 도움의 근거가 되는 것으로 다음과 같은 문헌들을 추가할 수 있습니다.

- 봉헌생활회와 사도생활단 성(수도회성)의 훈령 「수도자 양성 지침」(Potissimum institutioni, 1990.2.2.). 이 훈령은 봉헌 생활 가운데 특히 관상 생활을 폭넓게 다루고 있습니다(IV장, 78-85항 참조).

- 교황청의 여러 부서들이 공동으로 발표한 「발전」(Sviluppi, 1992.1.6.). 이 문헌은 봉헌 생활 전반과 관상 생활 일부에서 성소가 감소하고 있는 문제를 다룹니다(81항 참조).

- 교황령 「신앙의 유산」(Fidei Depositum, 1992.10.11.)을 통하여 반포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