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소개

2009년 성탄 메시지
  • 작성일2020/03/12 14:05
  • 조회 885
[2009년 성탄 메시지]

“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루가 2, 7)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에 아기 예수님의 탄생이 주는 기쁨과 은총과 평화가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성탄절은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습니다.”(요한 1,14)라는 지난 사목교서 주제 성구의 바로 그 ‘말씀’이 우리 가운데 오셨음을 기뻐하고 감사하는 날입니다. 말씀이신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에서 ‘더불어’ 사셨다는 이 사실은 우리가 아무리 기뻐하고, 아무리 감사해도 모자랄 놀라운 사건입니다.
 
 
큰 기쁨으로 성탄 사건을 되짚어 봅니다. 즉 저 높으신 하느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셨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말입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장소를 유다 땅 ‘베들레헴’ 이라고 이야기합니다(마태 2,1 우가 2,4). ‘베들레헴’ 은 우리말로 ‘빵집’ 이나 ‘떡집’ 이라고 번역됩니다. 또한 성경은 태어난 아기가 누여진 자리는 ‘구유’ 였다고 이야기합니다(루가 2,7). ‘구유’란 ‘말이나 소의 밥그릇’입니다. ‘빵집’ 이라고 불리어지는 작은 마을을 선택하시어 가축의 ‘밥그릇’에 오셨음은 예수님께서 ‘빵으로’ , ‘밥으로’ 오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밥을 먹고 사람이 힘을 내어 하루를 살아가듯이, 힘들고 어렵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밥이 되어주시려고, 힘이 되어주시려고 예수님께서 밥으로 오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밥으로 오셨다’ 는 것은 그분의 삶을 통해서도 거듭 확인됩니다. 공생활 중에 예수님은 모여든 군중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요한 6,35)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요한 6,41) 이렇듯 당신 생을 통하여 당신 스스로를 빵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생의 마지막 만찬 석상에서도 제자들에게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 주시며 “내 몸이다” , “내 피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몸’ 과 ‘피’를 “먹어라” , “마셔라” 라고 하십니다.(마태 26,26-30). 당신이 우리의 양식으로 오신 분이라고 당신 생명으로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로만 그러신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에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생명을 내어주심으로 당신이 생명을 내어주는 밥이심을 결정적으로 보여주십니다.
 
 
‘밥을 먹는다는 것’ , 그것은 바로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밥으로 오신 그분을 모신다는 것은 ‘그분에게서’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그분ㅇ르 우리의 양식으로 모시는 만큼 그분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미사는 바로 그 힘의 근원인 그분을 나누어 먹는 잔치인 것이며, 오늘 우리가 봉헌하는 ‘크리스마스’ 라 불리는 ‘그리스도의 미사’ 는 바로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어렵고 혼란한 시대입니다. 경제위기는 아직 채 가시지 않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국론분열이 일고 있고, 서민의 삶은 점점 더 어려워져만 갑니다. 생명보다는 죽음을 선택하는 문화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희망이 우리의 선택이어야 하건만 쉽게 좌절하고, 쉽게 절망합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주님께서는 ‘밥으로’ 오십니다. 당신을 ‘먹고, 마시어’ 힘을 내라 하십니다. 당신으로 힘을 내어 살아가라 하십니다. 당신에게서 희망을 얻고 포기하지 말라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 또한 당신처럼 밥이 되어 주라 하십니다. 이것이 성탄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입니다.
 
 
아울러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경은 아기 예수님을 구유에 누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레 대해 여관에는 들어갈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루가 2,7)
 
 
바로 이것입니다.
비어 있는 자리에 예수님은 오십니다.
이미 차 있는 여관에는 그분이 들어설 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밥으로 오신 예수님, 그분을 우리의 양식으로,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희망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분이 오실 자리를 바워두어야 합니다. 경제가 어렵다는 이유로 더욱 더 자신의 것만 챙기려고 합니다. 내어줄 줄 모르고 쌓으려고만 합니다. 내 것만 가득하다면 남은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욕심과 이기심으로 가득 찬 곳에는 그분이 오실 자리가 없습니다.
 
 
비워야 합니다. 오시는 예수님께 자리를 내어드려야 합니다. 그 때 예수님은 오시어 우리의 밥이 되어 주시고, 힘이되어 주시며, 희망이 되어 주십니다.
 
 
밥이 되어 오신 주님으로부터 힘을 얻어 다른 이에게 밥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 교우 여러분, 그 마음과 삶에 감사를 드리며 뜨거운 격려를 드립니다.
 
 
아울리 이 어려운 시기에 맞이하는 올해의 성탄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우리 모두에게 희망과 기쁨이 되기를 기도하며, 여러분 모두에게 평화를 빕니다.

 
 
2009년 예수 성탄 대축일에
천주교 원주교구장 주교 김 지 석 야고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