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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5월 성시간 묵상글
  • 작성일2020/05/21 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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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공인하기 전부터 있었던 성모 신심
동정녀이시며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분
 
제가 신학을 공부할 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한창 진행 중이었습니다. 그때 교회 일각에서는 성모님에 대한 공경을 없애자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갈라져 나간 형제들, 즉 개신교와 일치해야 하는데 성모님이 일치 운동에 방해가 된다는 주장이었지요. 그래서인지 유럽에서 새로운 신학을 공부하고 온 교수님들은 성모 신심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자제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저에게는 큰 혼란이었습니다. 교수님들이 교회의 아름답고 전통적인, 제가 어릴 때부터 배운 그 기도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하기도 했으니 혼란스러울 수밖에요. 신학교 때는 생활 규칙에 기도가 있어 그대로 했지만 사제가 된 다음에는 이 생각이 늘 저를 괴롭혔습니다. 그 이후 로마에 가서 공부를 마친 다음 교수 생활을 하면서 제 나름대로 하나의 결론을 내렸습니다. “성모 신심은 신앙 공동체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났고 교회가 후에 공인한 것이다.” 신자들이 모인 공동체 안에서 기도와 찬미의 노래를 바친 것을 교회가 인정한 것이지요.
2세기 말부터 오늘날까지 신앙 공동체 안에서 생겨난 성모님에 관한 많은 기도문들과 시, 그림, 조각 등이 그 증거입니다. 그중에 <일을 마치고 바치는 기도 성모님께 보호를 청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이 기도는 오래전부터 교회 안에서 전해져 내려왔는데, 1917년 이집트에서 대형 공사를 하다가 땅속에서 출토된 여러 유물 가운데에서 이 기도문이 기록된 파피루스가 발견되었습니다. 파피루스의 제작 시기를 조사해 보니 2세기 말에서 3세기 초의 것으로 밝혀졌다고 합니다. 저는 이에 대해 이집트와 시리아에서 교회의 수도원이 시작된 점을 미루어 보면 이집트의 수도자들이 사막에서 그 기도를 바쳤거나, 아니면 로마의 참혹한 박해를 피해 이집트로 가서 신앙생활을 하던 신자들이 바치던 기도가 아니었을까 생각했습니다. 어떻든 간에 박해를 겪은 공동체들이 성모님의 전구를 비는 기도를 바치고 있었다면 이는 매우 신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거룩하신 천주의 성모님,
저희를 지켜주시고
어려울 때 저희가 드리는 간절한 기도를 물리치지 마소서.
또한 온갖 위험에서 언제나 저희를 지켜주소서.
영화롭고 복되신 동정녀시여.
 
우리는 이 기도문에서 놀라운 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성모님이 하느님의 어머니이자 동정녀라는 점입니다. 성모님이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교리는 431년에 열린 에페소 공의회에서 천명되었고, 451년에 열린 칼케돈 공의회에서 재확인되었습니다. 동정녀에 관한 교리는 553년에 열린 제2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에서 공식적으로 선포되었지요. 하지만 이 기도문을 쓴 신앙공동체에서는 이보다 훨씬 전에 이러한 교리를 믿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모님과 같은 성인들을 통해 하느님께 전구를 청하는 기도문이 처음으로 교회 안에 등장한 것도 알 수 있습니다.
 
  • - 한 권으로 시작하는 신나는 신앙생활
  • 전달수 안토니아 신부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