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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교구장 사목교서
원주교구 작성 19.11.29 13:44 수정 19.12.04 08:53 조회 118
2020년 사목교서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1테살 5,17)

+ 찬미예수님,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은총의 성모 마리아 기도학교’가 완공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의 기도와 정성을 하느님께서 들어주셨습니다. 저희 교구로서 신자들의 규모나, 경제적 사정 등으로 보아서 참으로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교구민 여러분들과 다른 교구 신자들의 협조로 시작한 일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기도학교’ 완공과 더불어 올해를 ‘기도의 해’로 정합니다. 기도는 신앙인에게 필수적입니다. 오늘날처럼 실용성을 추구하는 현실에서 기도가 불필요하고, 시간 낭비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는 일을 소홀히 하고 있습니다. 사제건 수도자건. 또 평신도건 기도를 어려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기도하지 않고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서 어느 누구도 기도하지 않고서는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기도란 신앙의 언어요 신앙의 대화이기 때문입 니다. 기도란 바로 하느님을 만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만나지 않고, 하느님과 대화하지 않고서는 신앙도 구원도 가능하지 않습니다.

기도를 포함하여 모든 대화에는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만나고 대화하는 것입니다. 남북대화, 한일협상 등이 그렇습니다. 개인적인 경우에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나고 대화하고 협상합니다. 또 하나의 목적은 더 중요한 만남이요 대화입니다. 바로 친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더 사랑하기 위해서, 더 친해지기 위해서 만나고 대화하는 것입니다. 기도 역시 문제를 해결해 주시길 청하는 청원기도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힘이 들 때, 자신의 힘으로 도저히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경우, 인간의 능력으로 한계를 느낄 때 기도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것은 하느님에게만 가능하다는 신앙의 표현입니다. 하느님에게는 불가능이 없다는 신앙의 표현입니다. 이러한 신앙만이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것을 희망하게 합니다.

그러나 고마운 일에 감사를 드리는 감사기도도 있고, 하느님을 더욱 사랑하기 위한 묵상과 관상의 기도도 있습니다. 마르타의 동생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치 아래서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 바로 그러한 기도의 한 가지 모습입니다.

성경은 기도의 중요성을 잘 알려줍니다. 모세는 기도하였고, 여호수아는 전쟁터에 나아가 싸웠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기도할 때만 여호수아는 전쟁터에서 이길 수 있었습니다.(탈출 17,8-13 참조) 마르타는 예수님께 시중을 들었고,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경청하였습니다. 주님을 마주하고 그분의 얼굴을 바라보고, 그분의 말씀을 귀담아 듣는 일이 친교를 위한 좋은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마르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루카 10,41-42)

우리 그리스도 신앙인들은 사순절이 되면, 40일간 예수님의 광야의 삶을 본받아,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야 할 중요한 세 가지를 훈련하게 됩니다. 재의 수요일에 복음을 통해서 듣게 되는 세 가지는 곧 기도와 자선과 단식입니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위해서, 자선은 이웃과의 관계를 위해서, 단식, 곧 절제는 자신과의 관계를 위해서 필요한 요소들입니다. 올해 우리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위해 기도의 해를 보내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유일하게 전해진 기도가 바로 ‘주님의 기도’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담고 있습니다. 첫째로 하늘에 계신 하느님을 우리 아버지로 모시는 일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빠’, ‘아버지’이심을 깨닫기를 바라십니다. 예수님은 자주 강조하셨습니다. 참 아버지이신 그분을 목숨을 다해서 사랑하라고. 그분의 뜻이 우리들의 뜻보다 높기 때문에 그분의 뜻을 따르라고. 그래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는 천사들과 성인들에 의해서 이루어지듯이, 이 땅에서는 우리 그리스도 신앙인들에 의해서 이루어지도록 하라고. 아버지의 이름이 영광스럽게 되도록 해야 하는 일이 바로 그리스도 신앙인들이 자녀로서 해야 할 바라고. 바로 거기에 하느님 나라가 이루어진다고 가르쳐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하느님을 말하기조차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느님을 잃은 시대, 하느님의 이름이 남용되는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아무 데나, 아무에게나 -느님을 붙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느님을 가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가끔 우리는 하느님보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더 많이 이야기한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그러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그분을 하느님을 가리는 인물로 만들고 있습니다. 달은 보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려고 합니다.

더욱 조심해야 하는 일은 자신의 말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둔갑시키고, 자신의 뜻을 하느님의 뜻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십계명의 두 번째 계명인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일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한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는 첫째 계명을 어기는 일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잊어버리면 하느님은 그래도 우리를 잊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도망쳐도 하느님은 우리를 끝까지 찾으실 것입니다. 시인 프랜시스 톰슨은 하느님에게서 도망치면서 살았던 자신의 삶을 돌이키면서 [하늘의 사냥개]라는 시를 통하여 우리에게 경고한 바 있습니다.

“나는 그분에게서 도망쳤습니다. 밤 낮으로...
나는 그분을 피해 숨었습니다. 앞이 활짝 트인 무지개를 쫓아서.
...
가까이 가까이 그분이 추적해 다가왔습니다.
이제 끈질긴 추적의 큰 발걸음 소리가 가까이 당도했습니다.
부서지는 파도처럼 저를 에워싸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네가 나를 저버렸기에, 모든 것이 너를 저버릴 것이다.”
“어떤 것도 너의 피난처가 되지 못한다. 네가 나를 피난처로 삼지 않기 때문이다.”
“보아라! 아무도 너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네가 나를 만족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너에게서 도망칠 것이다. 네가 나에게서 도망치기 때문이다.”
...
제 곁에 그 발걸음 소리 멈추었습니다.
“가장 어리석고, 가장 눈멀고, 가장 연약한 자여! 네가 찾는 사람은 바로 나다. 너는 사랑을 쫓아 버렸다. 네가 나를 쫓아 버렸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우리 아버지로 모시는 일과 더불어 ‘주님의 기도’는 우리에게 절실한 것들을 청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 ‘죄의 용서’, ‘유혹과 악으로부터 보호’ 등입니다. 이 외에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주님의 기도’는 예수님이 바라시는 기도요, 우리에게는 가장 소중한 기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도하기를 간곡하게 권고하십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말씀으로만이 아니라 당신이 모범적인 기도의 삶으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우리가 기도해야할 이유는 많습니다. 추수 밭에 모자라는 일꾼을 위해서(마태 9,38 참조), 우리를 힘들게 하고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루카 6,28; 마태 5,44 참조), 미구에 닥쳐올 악에서 벗어나기 위하여(루카 21,36 참조),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루카 22,40 참조). 그리고 우리 삶에서 필요한 도움이 많습니다. 부모님을 위해서, 자녀들을 위해서,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순교자들의 시복 시성을 위해서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의 중요한 자세들도 가르쳐 주십니다. 입술로만이 아니라 마음으로(마태 15,8 참조), 끈질기게(루카 11,5-8 참조), 겸손한 마음으로(루카 18,9-14 참조), 단식과 함께 전심전력으로 기도하라고 하십니다(마르 9,29 참조)

교회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좋은 기도를 많이 준비하였습니다. 미사는 가장 큰 기도입니다. 모든 기도의 종합입니다. 미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는 잘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훗날 하느님 앞에 가서 그 중요성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가장 큰 기도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마련해주신 제사 기도입니다. 묵주기도는 끊임없이 기도하기 위하여 가장 좋은 기도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습니다. 아주 오랜 시간 복음을 묵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그 잉태로부터 시작해서 부활과 승천 모든 중요한 과정을 모두 묵상할 수 있습니다. “이제와 우리 죽을 때 우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라는 청원이 담긴 성모송은 우리가 죽음을 맞이할 때 선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내어주신 성체의 강복과 조배 역시 훌륭한 기도입니다. 십자가의 길 역시 우리의 어려움을 이겨내는데 큰 힘이 되는 기도입니다. 성가 역시 하느님을 찬미하거나 우리의 어려움을 호소하는데 큰 힘을 지닌 기도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힘을 믿는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세상 모든 일이 하느님 손바닥안의 일이라는 것을 믿고 조용히 하느님의 때를 기다립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잘 참고 기다립니다. 물론 해야 할 일은 하지만, 자신이 최선을 다했다 하더라도 자만하지 않고, 그저 하느님이 직접 일하실 것을 기다립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실망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앞길이 캄캄하고,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지 않고 더 힘들어져도 희망을 갖고 기다립니다.

저는 원주교구 교우 여러분들이 기도하는 하느님의 사람, 하느님의 자녀이기를 기도합니다. 아울러 하느님께서 항상 교우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2019년 12월 대림 첫 주일에
천주교 원주교구 조규만 바실리오 주교
2019년 교구장 사목교서 2018.12.12 14: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