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소개

2008년 성탄 메시지
  • 작성일2020/03/12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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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성탄 메시지]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 (루카 2,12)

 
 
 
 
 
주님 성탄의 평화와 기쁨이 여러분 가정에 가득하기를 빕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메시아의 탄생을 알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오랜 세월 동안 그리스도를 기다렸습니다. 우리도 기다림의 대림절을 보내고 복된 주님의 성탄을 맞았습니다. 그렇게 기다리던 아기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베틀레헴에 가난하게 오셨습니다. 아기 예수님에게서 구약에서 예언했던 그리스도의 모습, 메시아의 권세 있는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그러기에 세상은 그분을 알아 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아기 예수님을 알아보고 경배했습니까? 주님을 알아 볼 수 있는 사람들은 베틀레헴 들판에서 양들과 지내며 밤에도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별 빛을 따라 먼 길을 여행하여 베틀레헴까지 온 동방의 세 현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세상이 말하는 권력과 부유로부터 거리가 멀었지만 물욕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못하는 사람이었지라도 그들에게는 성실함과 순박함이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의 헤로데 왕도 빌라도 총독도 평생 동안 주님을 만나지 못했지만 목동과 현자들은 아기 예수님을 만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그들은 세상이 알아보지 못하는 기쁨과 평화의 순간을 만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목동들은 어떻게 아기 예수님을 알아 볼 수 있었겠습니까? 천사들은 목동들에게 포대기에 싸여 있는 아기가 주님을 알아볼 수 있는 표징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부모님은 아기를 뉘일 여관도 찾지 못하고 양들이 머무는 마구간이었고 주님의 누운 자리는 구유였습니다. 위대하신 하느님의 아들이 태어나신 곳이 그렇게 누추하리라고 누가 생각할 수 있었겠습니까?
 
 
요즈음 경제적으로 무척 힘들기 때문에 우리는 나라 걱정과 함께 우리 생활에서 오는 어려움들을 겪고 있습니다.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우리 모두가 가난한 마음의 자세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보통 청빈에 대해서 생각할 때 우리는 흔히 물질적인 가난만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정신적인 가난도 중요한 것입니다. 물질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 수 조건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삶의 모든 것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도"하느님이냐 재물이냐?"라는 질문을 통해서 궁극적으로는 하느님만을 향하는 삶이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과거 어려웠던 시절에 쌀이 풍작 되는 것이 인간 행복의 조건으로 여겼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쌀과 농작물이 남아돌아가는 경제구조에서 농부들의 시름은 깊어만 가는 것입니다. 물질만능의 이익추구라는 가치관에서 우리가 행복해야 하는데, 인간정의와 존엄성이 위협받고 있는 큰 불행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현실인 것입니다. 우리는 경제성장이라는 구조에서부터 인간을 이익의 상품화로 전락시키고 도구화하면서 사실은 인간 존엄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인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들에서 우리 주님의 탄생은 큰 지침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아기 예수님의 모습처럼 가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아기 예수님께서 누워계신 구유의 낮은 자리로 내려 갈 수 있다면 우리는 물질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질만능의 허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우고 과소비라는 폐단에서 절약과 근검의 진리를 실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가정과 직장에서 주님의 가난한 삶을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요즈음 들어 근검절약하는 모습이 소홀해지는 우리 생활습관에서 늘상 쓰는 전기나 자동차 기름에서부터 아끼는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가난한 정신은 우리에게 모든 그릇된 길에서 바른 길로 가도록 안내해 줄 것입니다. 이사야 예언서에서 설명하였듯이 우리 가운데 한 아기가 태어나는데, 그는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을 비출 것입니다(이사 9,1-5). 가난하게 탄생하신 주님께서는 어둡고 혼란스러운 우리의 현실 삶을 비추시고 진정한 기쁨과 평화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성탄을 기뻐하며 그 희망을 가꾸면서 이 땅을 비추는 소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부터"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14)를 이룩해야 하겠습니다.

 
 
2008년 12월 25일 예수성탄대축일에
천주교 원주교구장 주교 김 지 석